포스테키안

2020 겨울호 / 선배가 후배에게

2021-01-19 137

익숙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

우리가 물리나 수학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 복잡한 기호와 수식들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치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물리뿐만이 아니라 어떤 학문을 처음 배운다면 그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나 관습에 익숙해지도록 반복적으로 학습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책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수학 공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는데요.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고, 어제까지만 해도 하지 못했던 내용을 날마다 터득하기는 하지만, 갑자기 넓은 전망이 열리는 정상에는 결코 오르지 못했다.”
수식과 기호, 공식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학습하는 과정에서 내용 전체를 아우르는 통찰력을 갖기 어려우므로, 한스 기벤라트의 말처럼 그 과정은 답답하고 지루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리가 아닌 다른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학습에 필요한 시간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죠. 안타까운 점은 친구들이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성적이 좋지 않아 자책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는 그것이 대입과 직결되는 문제였고, 대학교에 와서도 친구들이 전공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판단하는 경우를 여럿 보았습니다. 현재의 교육체계가 고등학교이든 대학교이든 모든 사람이 정해진 시간 내에 학습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지금 성적이 나쁘다 해서 재능이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옆에 있는 친구보다 덜 똑똑한 것일까요?

저는 물리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입학했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물리를 포기할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포스텍은 학교 특성상 어릴 때부터 수학과 과학의 문제 풀이에 익숙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일부는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에서 수상을 거두었던 경험도 가지고 있었죠. 저는 이과였긴 했지만, 일반고에서 수능 공부를 해 왔기에 대학교 수업의 대부분은 처음 공부해 보는 것들이었습니다. 까만 컴퓨터 화면에 깨알 같은 글씨로 코딩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기도 했고, 물리 수업 시간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옆의 친구들은 어렵지 않게 좋은 성적을 받는 것으로 보여 더 답답했죠. 소위 물리, 수학 머리가 있다고 하는 친구들을 보며, ‘아 저게 재능이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물리학과를 지망했던 저는 갈수록 외계어에 가까워지는 물리 수업을 들으며 물리를 거의 내려놓다시피 했었습니다. 정말로 물리에 등을 돌려버린 저의 마음과 태도는 D라는 성적으로 씁쓸하게 돌아왔었지요.
2학기가 되어서는 정말 많이 고민했었습니다. ‘나는 재능이 없는 걸까? 그러면 일찌감치 물리학자의 꿈은 포기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고 말이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옆에서 물리와 수학을 잘한다고 하는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수학 과학을 공부해 왔기에 저와 절대적인 공부량에서 차이가 났습니다. 또 오랜 시간 공부해 왔기에 그만큼 익숙할 것이고요. 그래서 그런 지난날의 격차를 메우고자 다소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일반물리 교재에 있는 문제를 전부 풀어봤었습니다. 그 과정은 조금 고통스러웠지만 내가 1학기 때 물리를 못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재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아직 익숙할 만큼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성적도 잘 받을 수 있었죠.

어쩌면 학습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재능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입을 중심으로 한 고등학교 교육은 그런 능력을 갖춘 친구들을 선호하죠. 선행 학습이 필수가 되어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에 반해 천천히 성숙을 이뤄나가는 친구들은 지금 당장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적이 나빠서, 시험점수가 안 나온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자신의 가능성을 일찍 닫아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학습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은 것일 뿐이니까요. 학습하는 속도가 느리거나, 빠르다고 해서 장점만 있는 것도, 단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랫동안 지속하는 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을 이뤄나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