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1 봄호 / 포라이프

2021-04-19 53

과학으로 세상과 소통하기 

 

# 말보다_글 

저는 솔직한 편입니다. 사람들을 대할 때 속에 있는 말을 편하게 하는 게 좋아요.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솔직하게 내 생각을 전하다 보면 의도했던 바와는 다르게 내 뜻이 잘못 전달되는 일도 있고, 그래서 원하지 않게 서로 기분이 나빠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진심을 확 꺼내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그럼 또 불편해지더라고요. 말은 한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잖아요. 친구에게 가족에게 모두에게, 내 진심을 편히 털어놓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눈치 보고 불편하게 이야기하게 되고, 그러면 마음속 이야기가 확 밖으로 나오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민 끝에 찾은 방법이 ‘글’입니다. 글은 말과 달리 주워 담을 수 있어요. 한번 실수로 잘못 내뱉은 말은 듣는 사람과 말한 사람 모두에게 상처로 남을 수 있죠. 하지만 한번 실수로 잘못 적은 글은 그냥 고쳐 쓰면 됩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 몇 번이고 심사숙고해서 수정한 최선의 결과물을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어요. 의도하는 바와 다르게 글이 써졌다면, 

그냥 지우고 다시 고쳐 쓰면 돼요. 그래서 저는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상대에게 제대로 전하기에는 말보다 글이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문장의 글이 마음에 더 와닿을 때도 있거든요. 

 

# 제대로_한번_써볼까? 

저는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진심을 담아 전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대학 입학 때까지는 진지하게 글을 쓸 생각은 못 하고 있었어요. 제가 글을 잘 쓰는지 의문이었거든요. 사실 모든 이들이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많이 고민하잖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글쓰기를 조금 더 본격적으로 해도 될 정도로 글을 잘 쓴다는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대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좋은 기회로 제 글쓰기 실력이 그렇게 부끄러울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빠지기 시작했고 5년이 지난 지금, 드디어 저의 첫 번째 책 출판을 위해 열심히 원고를 쓰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죠. 

그때 아마 친구랑 술 마시러 가는 길이었을 거예요. 우리 학교 캠퍼스의 108계단이라는 까마득한 높이의 계단을 내려오다 발목을 삐끗해 2달 정도 목발을 짚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너무 심심하더라고요. 그래서 기숙사 방에서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우리 학교 학술정보관에 있는 ‘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에서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을 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 심심했는데 잘됐다고 

생각해 ‘너 살고 나 살자’라는 제목으로 한국 사회가 행복해 질 방안에 대한 제 생각을 담은 간단한 글 한 편을 적어 제출했죠. 그리고 놀랍게도 1등, 대상이라는 결과를 받았어요. 사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좋게 봐주셨지만, 사실 그렇게 훌륭한 글은 아니었거든요. 지금 와서 그때 쓴 글을 읽어 보면 부끄러울 정도죠. 

저는 어쨌든 1등을 했고, 거기서 엄청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데, 또 나쁘지 않게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그래서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서 꾸준히 에세이를 연재할 기회를 얻었어요. 2018년 봄부터 2020년 봄까지 2년 동안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생명과학으로 배울 수 있는 생활 속 지혜와 교훈을 다루는 에세이를 연재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과학 저술가의 길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 내가_작가가_된다고? 

BRIC 덕분에 남들에게 보여줄 글을 처음 제대로 쓰기 시작했고, 나와 비슷하게 글과 소통에 관심 있는 과학인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내가 좋아서 재밌어서 하는 글쓰기가 상당히 의미 있는 행위라는 걸 알게 된 거죠. 

많은 이들이 과학을 곧 지식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식은 과학적 과정에 의한 결과에 불과해요. 과학의 진짜 가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습니다. 자연을 느끼고 이를 설득력 있고 논리적인 문장으로 풀어내기까지의 관찰, 가설 설정, 실험, 검증, 결론 도출 등의 과학적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꼭 배워야 할 삶의 지혜를 담고 있죠. 논리적인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이를 설명할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자연을 효과적으로 재현하여 실험하고, 그 결과를 해석해 최종적으로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적 태도는 분명 우리가 삶을 더욱 현명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과학 글쓰기는 과학의 진짜 가치를 프로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과 나누는 아주 소중하고 뜻깊은 행위입니다. 과학은 삶의 태도이기에 과학을 직업으로 삼지 않아도 충분히 과학적인 삶을 살 수 있어요. 이 과학 대중화의 의미를 깨닫고 점점 더 진지해지며, 어쩌면 내가 쓴 글이 다른 이의 과학적인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짧은 글이 아니라, 내 생각과 지식이 깊게 담긴 제대로 된 책 한 권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운이 좋았어요. 한국장학재단의 과학문화 전문인력 양성과정 ‘과학 저술가 과정’ 1기로 뽑혔거든요. 

이 과정이 끝난 작년 봄, 저술가 과정 멘토 선생님의 추천으로 한 출판사 대표님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원에서 연구하는 신경 유전학의 역사와 연구 동향을 소개하는 과학책에 대한 구상을 전해드렸죠.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과학자들이 유전자, 뇌, 그리고 동물 행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과학적 태도를 보여주는 책을 쓰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다행히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렇게 바로 출판 계약을 하고, 본격적으로 원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작가가 된 거죠. 

대학원 연구가 바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 아직 책을 완성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올해 안에 출판되는 걸 목표로 열심히 글을 쓰고 있어요. 또, 제가 처음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도와준 BRIC에도 『랩노트』라는 제목으로 제 대학원 생활 일화를 담은 글도 연재하고 있어요. 연구자가 실험실에서 겪는 진짜 과학적 과정을 생생히 보여주려 시작한 연재죠. 다행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재미있게 보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계속 글을 쓸 거예요. 지금 대학원생이고, 연구자의 길도 계속 가겠지만, 제가 좋아하는 글쓰기도 함께 할 계획입니다. 여러분도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자신 있게 이것저것 도전해 보기를 추천해 드려요. 심심해서 참가한 공모전에서 과학 저술가로의 길이 시작된 저처럼, 어쩌면 사소한 용기가 인생을 바꿀지도 모르니까요. 

 

글. 생명과학과 졸업 대학원생 곽민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