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1 여름호 / 크리에이티브 포스테키안

2021-07-20 77

3년 반의 휴학을 마치며

눈 깜짝할 새 지나간 창업 후기

 

안녕하세요, IT융합공학과에 재학 중인 14학번 윤지현입니다. 2021년의 포스텍 안에서 14학번 친구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기 힘든 와중에, 외롭게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며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토록 졸업이 늦어진 이유는 창업을 위해 장기간 휴학 중이기 때문입니다. 3학년까지의 학업을 마치고 휴학하여 2017년부터 지금까지 쭉 서울에 있었습니다.
처음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교내 수업 <창의IT설계>라는 과목을 들으면서였습니다. 미래에 정말 강력한 도구일 것 같다는 생각에 IT융합공학과 진학을 선택했는데 창의설계는 IT융합공학과의 전공 필수로 있던 프로젝트 과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학생 개인별로 하나씩 자기만의 아이템을 구상하여, 한 학기 동안 개발하고 이를 평가하는 수업입니다. 무려 6학점의 프로젝트이므로 그 학기의 성적을 좌지우지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같이 밤샘할 기회를 곧잘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창업을 시작하기 직전 연도에 착수했던 아이디어는 음성 인식으로 실시간 자막을 생성하여 청각장애인의 학습과 소통을 돕는 소프트웨어였습니다.
네이버에서 연재되었던 <나는 귀머거리다>라는 웹툰을 보면 작가님께서 청각장애인으로서 겪은 일상 에피소드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작가님이 대학교 때 실시간 속기 지원을 받았는데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수업 때 바로 옆에서 타이핑해 주니까 교수님께서 하시는 수업 내용뿐만 아니라 농담까지 다 캐치하여 다른 학생들과 같은 타이밍에 웃었던 것이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에피소드를 보면서 초기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주변에 타이핑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도 쓸 만한 제품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필요할 때 언제든 이용하려면 AI 도입이 기존보다 더 유용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좋은 기술들을 필요한 곳에 잘 연결하기 위해 ‘AI를 통한 타이핑 지원’을 창의설계 주제로 정했습니다.

프로토타이핑 이후로 포항 근처 농아인 협회나, 옆 도시의 대구대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 등을 방문하여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주로 들었던 기억에 남는 피드백은 “학창 시절에 쓸 수 있었더라면 학교 다니기 좋았을 텐데”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이후 수업으로만 끝내지 않고 전국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잘 사업화해서 서비스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좋은 동료들과 함께 팀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수업 당시에는 조악한 수준의 결과물이었지만 지금의 회사를 창업하기 위한 좋은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창업 이후에는 뛰어난 개발자분들과 고객팀 팀원들이 합류하면서 새로운 제품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찬찬히 준비하며 휴학을 결심했던 것은 3학년 2학기 때였습니다. 교내 창업경진대회 등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어렵게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보았습니다. 이때부터 대회 준비를 도와주셨던 대학원생 선배들과 교수님, 같이 휴학을 해주었던 친구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당시 가장 마지막 기억은 차가운 한겨울에 과기대 창업경진대회 발표 시간과 일반화학 기말고사가 겹쳐 있어서 서둘러 시험지를 내고 행사장으로 전력 질주했던 기억입니다. 학기가 무사히 마무리되고 나서 예정대로 휴학하며 네이버 D2SF의 도움으로 서울에 사무실을 구했습니다. 서울로 올라온 후에는 비슷한 시기 상경했던 친오빠와 함께 자취하며 주거를 해결했고, 오빠가 있으면 아주 좋다는 것을 (20년 정도 만에)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휴학했던 시점으로부터 4년 정도가 지났고, 3번의 투자 유치를 거치며 20명의 팀원과 함께 열심히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개학을 맞이했을 때, 전국적으로 청각장애 학습 지원을 위한 실시간 자막 지원을 제공하였습니다. 매월 조금씩 발전해가는 서비스와 팀을 보며 힘든 시간 속에서도 보람을 느끼고 창업을 계속하게 하는 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여기저기서 AI 기술들이 점점 더 빠르게 세상을 바꿀 것 같아서 관심 있게 찾아보고 있습니다. 강력한 도구인 만큼 필요한 분야와 잘 연결하여, 유익한 방향으로 활용되는 사례들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창업에 큰 관심이 있는 독자분들이 계신다면 학교 안에서 작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보거나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같이 길게 얘기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둘 다 할 수 있는 우리 학과로 오세요!) 프로그래밍을 배울수록 더 빠르게 직접 구현할 수 있어서 유리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학교 수업들과 관련 동아리 활동도 창업 준비를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포스텍을 지망하는 학생분께서 읽고 계신다면 이번 포스테키안 여름호를 지나 가을호가 나갈 때쯤이 한창 입시 철일 것 같아서 마지막까지 응원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복학을 하여 수업을 들으면서 오랜만에 다시 교수님과 학생분들을 뵐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비록 온라인 속에서만 교류해서 아쉬웠지만, 점심마다 틈틈이 활력소가 되어 사업을 하는 데도 힘이 된 것 같아요. 그럼 1학기 잘 보내시고 다음에 또 봐요!

글. IT융합공학과 14학번 윤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