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

2021 여름호 / 포라이프

2021-07-20 127

포스테키안으로 산다는 것

 

고등학생 시절, 부모님 곁을 떠나고 싶진 않지만, 서울살이는 해 보고 싶었던 저는 대학 생활 4년을 서울에서 보내고, 취업은 부산에서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포항에서 대학 생활을 하게 되었고, 기간 역시 4년을 넘어 5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1년 반은 포항에서 보내지 않았지만, 그 시간 역시 저의 대학 생활이기에 그 모든 기간을 ‘포항’, ‘이공계’, ‘소수’, ‘비종합대’ 등의 키워드에 갇히지 않으려 애쓴 시간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열심히 사는 버릇이 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시작된 버릇인데, 끊임없이 어떤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매년 반장 또는 부반장을 하며 참여할 수 있는 모든 교내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포스텍에 왔을 때, 그저 신나 있었고 이전처럼 모든 것을 열심히 하고자 했습니다. 입학하자마자 학과 대표를 맡아 학과 학생회로 활동하게 되고, 포항공대 영자신문 The Postech Times의 기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영자신문사에 지원할 때부터 큰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학생기자 활동이 저의 대학 생활에 있어서 첫 번째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공식 업무들의 진행 절차를 배우고 교내외 다양한 인사들을 인터뷰하며 사회적 이슈들을 계속 주시하였습니다. 또한 다른 학생기자들과 기획 회의를 진행하고, 신문을 직접 디자인하는 것은 쉽게 겪을 수 없는 경험들이라 확신합니다. 때때로는 ‘이공계 학생’과 ‘학생기자’라는 신분 사이의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2학년이 되어서 학과 학생회에서는 기획부장이 되었고, 영자신문사에서도 수습기자에서 정기자로 승진하는 것에 모자라, 도서관 자치위원회 라온에 새로 가입했습니다. 일하는 게 재밌더라고요. 그 경험들로 그해 여름, 생애 첫 인턴을 하게 됩니다. 학교 밖에서 보내는 첫 번째 방학이기도 했습니다. 1학년 방학들은 모두 학교에서 계절학기 영어 과목을 수강하면서 보냈거든요. SES 프로그램으로 12주 동안 SK텔레콤에서 근무했는데, 부산에서 나고 자라 포항에서 대학을 다닌 저에게 ‘서울’의 ‘대기업’에서 하는 인턴은 제3의 눈을 뜨게 만들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학 생활 중 두 번째 터닝포인트였죠. 엄청난 업무를 맡은 것도 아니었고 엄청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인턴과 토플 공부를 병행하겠다던 무모한 도전 덕분에 제대로 놀지도, 제대로 공부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단지 서울에서 지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험이었고 단기 유학을 떠나야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름 포항에서도 학생기자를 하며 바깥세상에 관한 관심을 멈추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서울살이가 이 정도의 충격을 준다면 타국에서의 생활은 더 의미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 역시 이때였습니다.

3학년에 올라가면서 학과 홍보부에서 편집부장을 맡게 되어 학과와 관련된 교내외 소식을 보다 가까이에서 빠르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디자인 업체와 연락하고 학과 사무실 선생님들과 협력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이 실리는 포스테키안이 학생홍보단체 알리미가 발행하는 잡지라면, 산업경영공학과 홍보부 ‘산책’이 발행하는 IME Newsletter라는 소식지를 담당해 기틀을 마련했는데, 지금까지도 잘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한편 영자신문사에서는 부장기자가 되었고, 1지망 학교로의 단기 유학 파견도 되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세계문화 탐방대와 삼성SDS 연구장학생으로 선발되기도 했습니다. 어쩐지 건드리는 일마다 잘 풀려 굉장히 보람 넘치는 학기였습니다. 단기 유학이 대학 생활의 세 번째 터닝포인트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2019년은 통째로 터닝포인트 자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문화 탐방대는 2~4명이 한 팀으로 문화, 과학기술, 교육, 예술 등을 주제로 탐방 계획을 세우고 발표 면접을 통해 선정되면 장학금을 받고 탐방을 다녀오는 교내 프로그램입니다. 저희 팀은 ‘위기의 학생사회, 언론에서 답을 찾다’라는 주제로 10박 13일 동안 영국을 다녀왔습니다. 주제에서 읽히는 것처럼 학생기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런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맨체스터에서 언론사, 학보사를 방문하고 인터뷰하고자 했고,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결론을 얻고 돌아왔습니다.
연구장학생은 학기 중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알게 되었는데, 기업의 과제를 수행하면서 장학금을 받는 제도입니다. 코딩 테스트 이후 면접을 봤는데, 솔직히 면접에서 떨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합격이라는 연락을 받았고, 제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학기 중에 포항에서 서울을 오가는 쉽지 않은 일정을 소화한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포스테키안으로서 세 번째 여름, 이번에는 LGCNS에서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 인턴을 하게 됩니다. 이번에도 SES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했지만 모든 절차가 LGCNS 자체 진행 과정에 따라 이루어졌고, 교육과 업무 수행도 동일 과정을 거쳐 선발된 타대생들과 함께 진행되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두 번째 인턴인 만큼 지난여름보다 실질적인 결과를 내고 싶었으나, 배울 것이 한참 남았다는 것만을 깨달을 뿐이었습니다. 이후 학교에서 관련 과목(통계적 데이터 마이닝, 비즈니스 애널리틱스)을 수강했는데 ‘둘 중 하나라도 수강하고 인턴을 했다면 어땠을까’하는 후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3학년 2학기, 코로나가 없던 2019년 9월, 독일 RWTH 아헨공대로 단기 유학을 떠났습니다. 입학하던 때부터 3학년 2학기에 독일로의 단기 유학을 계획했었고, 운 좋게 1지망 대학에 파견되었습니다. 단기 유학에 있어서 저의 첫 번째 목적은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한 여행이었기에, 지리적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독일 체류 기간 155일 동안 약 50일을 숙박을 낀 여행을 다녀왔을 뿐만 아니라 당일치기를 포함하면 체류 기간의 절반가량을 여행에 투자했습니다. 여러 랜드마크를 직접 보고, 숙소에서 만난 처음 보는 사람과 술잔을 기울이고, 혼자 크리스마스 마켓을 쏘다니기도 했습니다. 또한 수업에서 배운 짧은 독일어를 생활에서 써보고, 파견된 학교에서 친해진 타대생과 함께 여행하며 맨눈으로 은하수를 보면서 사막에서 잠들고, 파리 개선문에서 새해 카운트다운을 했던 순간들은 앞으로 평생 제 삶의 원동력이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3년을 꽉 채워서 알차게 보내고 1년의 휴학 후, 2021년 1학기에 4학년으로 복학했습니다. 휴학 중에도 대외 활동, 공모전 등에 참가하고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되돌아보니 열심히 살던 버릇이 우물 안에 머물지 않으려는 버릇으로, 또 우물 밖에서도 열심히 사는 개구리가 되려는 버릇으로 발전한 것도 같습니다. 포스테키안은 포스텍 밖에서 그 진가를 드러내기 마련이니까요 🙂

The Postech Times (http://times.postech.ac.kr/index_eng.html)
IME Newsletter (https://ime.postech.ac.kr/index.php/data/newsletter)

글. 산업경영공학과 17학번 김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