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

POSTECH, 연구의 고정관념 뒤집다…Science 논문 2편 게재

2020-11-23 3,291

– 화학과 김경환 교수, 물 연구 근본 바꾸는 가설 실험으로 입증
– 신소재공학과 정운룡 교수, 이온 전도체 활용 ‘인공 피부’ 개발

POSTECH 연구 성과 2건이 20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최신호에 동시 게재됐다. 이전에 없던 연구를 개척하며 만들어낸 성과다. 특히 기초와 응용 분야에서 각각 학문적 진보를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개교 이래 최초로 사이언스지 동시게재를 이뤄낸 두 주인공은 화학과 김경환 교수와 신소재공학과 정운룡 교수다. 김경환 교수는 물이 영하 70℃에서 두 가지 액체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물의 비밀을 풀 수 있는 가설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정운룡 교수는 사람처럼 온도와 압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인공 피부’를 개발한 성과를 발표했다. 이 역시 기존 열과 압력을 동시에 느낄 수 없던 인공피부의 한계를 극복해낸 것이다.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함과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김경환 교수와 정운룡 교수. 이 둘을 만나 그간의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가벼운 물’과 ‘무거운 물’···영하 70℃서 발견한 물의 신비

물은 생명을 불어넣는 근원이다. 인간은 보름 넘게 음식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조건이 달린다. ‘단, 물은 계속 마실 때’이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사람은 며칠도 살 수 없다. 우리 몸은 66%가 물로 이뤄져 있고 이 중 10% 이상만 잃어도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지구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겨울철 영하의 온도에서 강 표면이 얼어도 그 밑에선 물이 흘러 생태계가 유지된다. 국내외 연구진이 생명의 기원을 물에서 찾는 이유다.

물은 중요성만큼이나 성질도 독특하다. 4℃에서 가장 높은 밀도를 지니고 있으며 다른 액체와는 다른 성질들을 지녀 생명 현상에 기반이 되고 있다. 다만, 물의 특성에 대한 연구는 수십 년 동안 가설 제시와 증명이 지속됐지만, 가설을 입증할 실험 결과가 부족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경환 화학과 교수팀이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영하 70℃에서 물이 가벼운 물(LDL)과 무거운 물(HDL)로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물의 비밀을 풀어낼 실험으로 입증해 학계에 조명을 받고 있다.

김경환 교수는 앤더스 닐슨(Anders Nilsson) 스웨덴 스톡홀름대 교수와 국제 공동 연구를 통해 ‘고압 과냉각 물에서의 액체-액체 전이(LLT) 실험적 관측’ 결과를 발표했다. 영하 70℃ 조건에서 얼지 않는 물을 만들어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통해 물의 구조를 들여다본 결과, 가벼운 물(LDL)과 무거운 물(HDL)이 상전이가 이뤄지고 이를 통해 액체상태가 두 가지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연구진은 물의 변칙적인 특성을 ‘액체-액체 임계점'(LLCP) 가설을 통해 증명했다. 영하의 극저온 온도에선 물이 가벼운 물(LDL)과 무거운 물(HDL)로 나뉜다는 가설이다. 이를 증명하고자 연구진은 영하 70℃(205K)에서 얼지 않는 물을 만들었고, X선 레이저를 쏘아 펨토초(10-15s) 단위에서 구조를 분석했다. 2017년에는 영하 43℃ 조건에서 이를 관측해 사이언스지를 통해 발표한 바 있다.

◆ 생각의 전환, 물 연구의 근본을 바꾸다

가설을 실험적으로 입증하는 과정은 첩첩산중이었다. 나노초 단위에서 이뤄지는 측정도 난관이었지만, 영하 70℃에서 얼지 않는 물을 구현하는 어려움은 더 했다. 2017년에 영하 43℃에서 이뤄진 실험을 물을 계속해서 빠르게 냉각시키는 과정을 택했다. 그러나 극저온 온도로 낮아질수록 물을 액체 상태로 구현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진은 기존 관점을 통째로 바꿨다. 물을 얼리는 방식이 아닌, 이미 얼려진 비정형 얼음을 순간 가열해 물을 액체로 만들어 구조를 보기로 한 것이다. 김 교수는 “비정형 얼음을 가열해 물을 들여다본 결과 두 가지 액체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며 “나노초 시간대에서 이뤄지는 연구 과정에서 4세대 방사광가속기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연구진은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에서 극도로 짧은 펄스(100 펨토초 이하)의 X선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물이 두 가지 액체상으로 존재한다는 가설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물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의미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 학문적 논쟁 넘어 비난 겪어도 ‘뚝심 연구’

김 교수는 “학회에서 발표하는데 누군가 ‘이 연구를 믿어선 안 된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학술적으로 심한 논쟁과 다툼 끝에 만든 결과라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그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을 ‘발견의 행복’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른 이론을 믿고 계신 분들이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지만, 일단 연구 주제 자체가 재밌었다”며 “물 연구를 선도하는 분과 국제 공동 연구를 했고, 4세대 방사광 가속기를 통해 새로운 실험적 결과를 증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은 생명의 근원이 될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며 “물의 특성을 기반으로 실험을 고려할 텐데, 물의 특성을 더 잘 이해한다면 이에 영향받는 시스템들에 대한 보다 정확한 연구들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연구에는 ‘물 연구의 대가’ 앤더스 닐슨 스톡홀름대 교수가 함께했다. 뿐만 아니라 POSTECH 화학과 학부생 2명(유선주, 정상민)도 참여했다. 사이언스 논문에 참여저자로 이름을 올린 유선주 화학과 석사생은 “과학자라는 꿈을 꾸면서 교과서에 남을 만한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학에 진학했다”며 “이런 의미 있는 연구에 함께할 수 있어 보람을 느꼈고 꿈에 다가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사이언스지에 게재된 이번 연구 논문은 ‘고압 과냉각 물에서의 액체-액체 전이의 실험적 관측(Experimental observation of the liquid-liquid transition in bulk supercooled water under pressure)’이다.

→ 김경환 교수팀 연구성과 보도자료 바로가기

 

“앗 따가워” 열·꼬집기, 고통 느끼는 ‘인공 피부’ 등장

사람처럼 온도와 기계적 변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인공 피부’가 개발됐다. 그동안 온도와 연신(延伸·길이를 늘임)을 동시에 감지하는 인공 피부 개발은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정운룡 신소재공학과 교수와 유인상 박사가 ‘이온 전도체’라는 소재를 활용해 피부를 꼬집거나 비틀면서도 동시에 온도를 감지할 수 있는 인공 피부를 만들어냈다. 향후 웨어러블 온도 센서부터 사람의 촉각을 대체할 수 있는 인공 피부까지 폭넓은 활용이 기대된다.

정운룡 교수와 유인상 박사는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과 국제 공동 연구를 통해 온도와 연신을 동시에 감지하는 ‘다기능성 이온-전자 피부’를 개발했다. 그동안 온도와 연신을 각각 측정하는 센서는 있었지만, 단일 센서로 구현한 인공 피부는 이번이 처음이다.

피부는 우리 몸속에서 가장 큰 감각기관으로 변형과 온도 등을 느낀다. 외부 자극이 가해지면 뇌에 신호를 보내 이를 감지한다. 사람은 뜨거운 열이나 꼬집기와 같은 압력이 가해질 때 고통을 느낀다. 사람의 감각기관은 외부 자극을 동시에 받아들여 감각을 구분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인공 피부는 사람처럼 열과 변형을 동시에 느낄 수 없었다. 사람의 촉각 수용체의 정도로 크기를 줄이는 과정에서 온도값과 연신값이 서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열이나 꼬집기와 같은 측정값을 얻으려면 전기의 저항이나 정전용량 등을 통해 신호를 얻는데, 이 과정에서 온도에 의한 변화인지, 연신에 의한 변화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인간 피부처럼 전해질을 함유한 이온 전도체 소재를 활용했다. 이온 전도체는 변형이 가해져도 파괴되지 않을 뿐 아니라 측정 주파수에 따라 측정되는 전기적 성질이 달라진다. 이런 성질을 활용해 온도와 연신을 구분하는 하나의 단일 센서를 만들어 인공 피부를 구현할 수 있었다. 이를 활용하면 사람 피부처럼 온도 자극과 기계적 자극을 독립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유인상 박사는 “기존 연신성 온도 센서의 가장 큰 문제는 기계적 자극과 온도 자극에 의한 전기적 신호 변화를 구분하기 어려운 점에 있었다”며 “이온 전도체를 이용해 단일 물질에서 두 가지 변수로써 정전 용량과 저항을 함께 측정하여 두 가지 미지수인 온도와 기계적 변형을 구분해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신문 트렌드 읽는 과학자

연구팀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촉각을 대체할 수 있는 인공 피부 개발을 목표하고 있다. 이전에 없던 연구를 개척하는 만큼 연구진이 자율적으로 아이디어를 개진할 수 있는 연구 문화를 지향한다. 특히 정 교수는 연구가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도록 논문뿐만 아니라 매일 신문과 저널을 보며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정 교수는 “연구자로서 그리고 지도교수로서 현재의 연구가 어느 시기에 실제 활용될 수 있는지 예측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며 “논문뿐만 아니라 신문을 통해 트렌드를 파악해야 경쟁하는 기술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연구를 하다 보면 자기 연구 분야가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게 느껴지지만, 경쟁하는 기술들과 비교했을 때 뒤떨어진다면 냉정하게 연구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고도 했다.

정 교수는 기초 연구와 응용 연구를 구분하기 위해 연구소기업을 창업하기도 했다. 정 교수 연구팀은 수시로 연구 방향성을 논의한다. 연구원이 총 21명이 소속돼 있고, 연구원들은 각자 연구 스케줄을 정하고 정 교수와 소통한다. 트렌드와 방향성을 잃지 않기 위해 연구 계획을 한 달가량 먼저 세우고 연구를 진행하는 문화를 지향하고 있다.

◆ 시간이 걸려도 연구 방향성 집중

정 교수는 “연구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며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라고 주문한다”고 했다.

논문 작성에도 방향성이 중시된다. 정 교수와 연구원들은 연구 첫 페이지에 들어가는 인트로에 가장 공을 들인다. 연구에 대한 소개가 분명해야 연구 방향성을 지속할 수 있다는 목적에서다. 인트로에 대한 수십 번의 조정이 끝나야 비로소 한 편의 논문 작성이 시작되는 것이다. 정 교수 연구팀은 사이언스를 포함해 네이처 머티리얼스 등에도 굵직한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이번 연구 논문에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린 유인상 박사는 “사이언스에 논문이 게재됐다는 건 연구의 방향에 대해 해왔던 고민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해준 계기”라며 “다음 연구들도 자신감을 가지고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이온 전도체를 활용한 인공 피부를 개발하는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촉각을 대체할 수 있는 인공 피부를 만들어 촉각 기능을 잃은 이들에게 기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이언스지에 게재된 이번 연구 논문은 ‘이온 완화 동역학 기반의 인공 다기능성 수용체'(Artificial multimodal receptors based on ion relaxation dynamics)이다.

→ 정운룡 교수팀 연구성과 보도자료 바로가기